밤의 도서관 -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 교보문고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 도서관의 역사와 철학이 담긴 유일무이한 책 전작 『독서의 역사』가 독서 문화에 대한 변천사를 다루었다면, 『밤의 도서관』은 도서관의 역사와 함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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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동안에 도서관은 질서의 세계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분위기가 바뀐다. 소리는 줄어들고, 생각의 아우성은 더 높아진다. 시간이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의 중간쯤에 가까워지면, 나는 편안하게 세상을 다시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도둑처럼 움직이게 되고, 내 움직임은 비밀스럽게 느껴진다. 책들이 바야흐로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고, 독자인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문자들의 신비로운 의식을 통해 어떤 책이나 어떤 페이지에 유혹을 받아 끌려들어간다.
학자는 앉아서 집중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자신이 열망하는 특별한 진리의 씨앗을 착아 책을 열성적으로 뒤적거린다.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면 그가 얻으려는 소득이 줄어들고, 힘들게 얻은 것마저 부지불식간에 빠져나간다. 반면에 독서가는 처음부터 뭔가를 배우려는 욕심을 억눌러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식이 어쩔 수 없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식을 계속 추루하고 체계적으로 독서하며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한다면,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를 향한 한층 인간적인 열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기억과 예술의 공통점은 선택의 요령, 즉 세세한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런 결론은 예술, 특히 산문에는 칭찬의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기억에는 모욕적인 말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욕은 당연하다. 기억에는 전체적인 그림이 담기지 않고 세세한 것이 주로 담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이라이트가 전체는 아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한다는 확신, 또 우리가 모든 생명체에 그럭저럭 살아가게 허락한다는 확신은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기억은 알파벳 순서로도 정리되지 않는 도서관, 어떤 작가의 전집도 갖추지 못한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책이 우리 고통을 덜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읽어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를 수 있다. 책이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책은 우리에게 무수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변화의 가능성, 깨달음의 가능성......